詩境의 아침

-신경림

하늘과 초원뿐이다.

하늘은 별들로 가득하고 초원은

가슴에 자잘한 꽃들을 품은 풀로 덮였다.

낮에는 별이 피하고 밤에는 꽃이 숨어

멀리서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새벽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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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하늘을 지키느라 지친 별들이

눈을 비비며 은하를 타고 달려내려온다.

순간 자잘한 꽃들도 자리를 박차고 함성과 함께 뛰쳐나와

마침내 초원에서는 화려한 윤무가 벌어진다.

언제가 될까, 내가 그 황홀한 윤무에 끼여

빙빙 돌아갈 날은.

-신경림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2014)

신경림 선생의 근작 시집 『사진관집 이층』에서 오래 필자의 시선을 끈 작품은 죽음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윤무(輪舞)」와 「유성(流星)」이라는 두 편의 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건너가는 행위, 그 죽음을 제재로 한 시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관적 관념이나 종교적인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기 일쑤다. 신경림 선생은 앞선 10시집『낙타』(창비,2008)에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에 비견될「귀로(歸路)에」를 비롯하여 표제시 「낙타」같은 죽음을 직접 다루고 있는 빼어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귀로(歸路)에」가 죽음, 저승길로 가는 모습이 참 인간적이고 세속적이라면 「윤무(輪舞)」는 가히 말 그대로 예술적이다. 바퀴가 굴러가는 춤, 윤무(輪舞)로 죽음으로 건너가는 걸 그려놓고 있으니. 먼저 ‘윤무(輪舞)’는 별들이 있는 하늘과 꽃들이 있는 초원이 각각의 짝으로 해서 이뤄진다. 행간 걸침으로 놓여있는 1연의 맨 마지막 시어 “새벽이면”에 의해 그 윤무는 시작되는데, “밤새 하늘을 지키느라 지친 별들”과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오는 “자잘한 꽃들”로 그 화려한 윤무가 펼쳐지는 것이다. 신경림 시인은 저승길로 가는 것, 즉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화려한 윤무(輪舞)로 자연스레 아니 황홀하게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낮과 밤, 삶과 죽음은 바로 대(大) 우주의 화려․황홀한 윤무(輪舞)인 것이다. 죽음과 떠남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우리시의 한 극치(極致)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황홀경의 윤무로 펼쳐져 나올 신경림 시인 다음 시편들의 진경(眞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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