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境의 아침

-차영호

복사꽃 틈새로 손 디밀어

오톨도톨 돋는 별을 매만지다 불쑥

아름답다의 ‘아름’이

병을 앓다의 ‘앓음’에서 생겨났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낯선 도로변에서 무단 숙박한

차 보닛이며 지붕에 콩콩

도장 찍힌

앙알거림

처음 만나 밤 지샌 별

먼동보다 먼저 눈 깜짝거려 배웅하며

산모롱이 서성서성 서성이는

이모티콘,

그리운 문맹文盲이여

영덕 달산의 봄밤, 생각만 해도

복사꽃배 고동소리 봄밤봄밤 들리고

분홍 꽃분홍 서치라이트가 파―

바다는 지레 눈 감고

조각조각 쪼개지더군

-차영호 시집『애기앉은부채』(2010,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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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사는 차영호 시인은 복사꽃 피는 봄날 왜 영덕 달산에서 밤을 지새웠을까? 또 “복사꽃 틈새로 손 디밀어/오톨도톨 돋는 별을 매만지다 불쑥/아름답다의 ‘아름’이/병을 앓다의 ‘앓음’에서 생겨났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시의 내용으로 봐서는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짐작만 해본다면 가족이나 사랑하던 사람과의 사별(死別)에서 오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길을 나서 떠돌다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몰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시간이 복사꽃 핀 봄밤이어서 좋고, 그 장소가 경북 영덕군 달산면 옥계라서 더욱 좋다. 내가 여러 번 가 봐서 안다. 물 맑고 골 깊은 옥계의 산비탈에 복사꽃이 피면 그야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그리운 이를 떠나보내고 또 이렇게 만나면 되는 것이다. 복사꽃이 활짝 핀 영덕군 달산면 옥계계곡은 마치 거대한 복사꽃배 같기도 하다. “복사꽃배 고동소리 봄밤봄밤 들리고/분홍 꽃분홍 서치라이트가 파―/팟” 한다는 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쯤 그 복사꽃배 아직 그곳에 머물고 있을까? 나도 복사꽃배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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