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억울하오. 나는 맹세코 손 한 번 잡은 적이 없소.”
변학도는 억울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쳤어.
“모두 눈 감아 줄 테니 솔직히 말해보오. 남원 가서 계집과 살다시피 한 거 아니오? 진실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요.”
부인은 자존심을 버리고 진실을 알고 싶어 했어.
“여보 부인, 나를 그리 못 믿겠소? 맹세코, 여자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았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오. 기생이라 하여 수청 들라는 말은 했소. 그건 내가 인정하리다. 하지만 남원에서 단 한 번이라도 기생과 동침했다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사람들이 알 것이오. 죽어도 그런 일이 없어요. 제발 부탁이니 수장들을 소집하여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오.”
변학도의 비장한 말에 부인은 생각에 잠겼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남편이지 않는가. 더구나 죽어도 동침한 적이 없다며 억울하다는데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어. 왜냐하면 같이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속이거나 타박한 적이 없고 늘 성실했으니까 기회를 주고 싶었어. 명예 회복도 해야 하고.

마침내 부인은 수장들과 긴급회의를 했어.
“남편의 문제로 갑작스럽게 회의를 소집하게 되어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은 나 또한 믿을 수 없어서 당황스럽습니다. 부사의 자리에서 기생들을 품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편은 기생의 손 한 번 잡아보지도 않았다며 억울해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매형이 누님께서 시키신 일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처리하신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매형께서 벼슬을 얻고 나서 계집 문제로 파직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멈춰야 합니다. 매형은 억울하다고 하지만 증거도 없고 믿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자중하며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듯합니다.”
남동생은 매형의 배신에 마음이 반쯤 닫혀있었어.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상권에서 손을 떼게 하시지요.”
“여기에서 결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자세한 얘기를 제삼자를 통해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님께서는 억울하다 하시고, 봉고파직은 증거이니 어느 말이 맞는지 하수인들을 불러 확인해 보시지요.”
변학도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다른 수장이 옹호하며 나섰어.
“남원의 육방을 소환하여 사건의 진상을 들어보는 방법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부사를 곁에서 모셨으니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가 직접 그들의 증언을 듣고 다시 이 일을 의논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가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변학도의 부인은 신중한 사람이었어. 미우나 고우나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
“수장들과 의논했는데 남원의 육방을 증인으로 세우기로 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불리하다면 미리 손을 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남편의 눈치를 보며 부인은 도와줄 뜻을 내비췄어.
“나는 떳떳하니 손을 쓰지 않아도 되오. 그들이 있는 사실 그대로만 증언해주면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거요. 부인, 나는 너무 억울해서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을 것 같으오. 모쪼록 내 한을 풀어주시오.”
변학도는 이몽룡과 성춘향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어.
“당신을 믿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원수를 갚아드리면 되겠습니까?”
“남원에서 육방이 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실을 밝혀주시오. 나의 죄가 무고로 나오면 이몽룡이 다시는 고개 들지 못하도록 복수해 주시오. 기생의 손 한 번 잡아보지도 못했는데 억울하게 누명 쓰고 욕을 얻어먹은 대가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오.”
변학도는 남원에서 육방한테 서약서를 받아놓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자신의 잘못은 증언하지 않을 테니까. 변학도의 부인은 남편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서 고개를 끄덕였어. 죄가 있으면 육방을 매수하라고 할 텐데 사실 그대로만 증언해달라고 했으니 믿음이 갔어. 바람피우지 않은 남편이 고마웠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남편을 정말 믿고 싶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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