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형수님, 형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습니다. 기생 딸에게 수청 들라고 한 것은 흉도 되지 않습니다.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니 용서하시고 형님의 원수를 갚아주시지요.”
시동생이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말하자 아들이 나섰어.
“사람이 살면서 한 번 쯤은 실수를 하며 살지요. 아무리 목석같은 사내라도 상대가 절세미인이면 쉽게 넘어갑니다. 아버님께서 손 한 번 못 잡아보고 욕을 보셨으니 그 억울함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배신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사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크게 문제 삼은 것은 월권이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어머니
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소자는 명예를 걸고 어사 이몽룡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어찌할 생각이냐?”
변학도의 억울함이 풀리자 부인은 이몽룡을 용서할 수 없었어.
“이몽룡의 편을 들어주고 감싸준 대감들과는 인연을 모두 끊어서 그들을 고립시켜 어사와 스스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변학도 부인은 자식의 앞날을 위해 결단을 내렸어.
“수장들과 형제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를 기방마다 소문내고 상가에도 소문내 주시오. 특히 이몽룡을 두둔하는 자들이 있다면 모든 지원을 끊고, 제 남편을 지지하는 대감댁에는 두 배의 선물을 보내주시오. 머지않아 이몽룡은 월권행위로 삭탈관직 당할 것이고 남편은 승승장구하여 출세할 것이오. 어려운 이때 모두 아낌없는 지원을 바랍니다. 훗날 우리의 영광이 그대들 모두의 영광이 될 것이오. 또한 육방 그대들에게도 크게 상을 내릴 것이니 그 충성심을 남편에게 쏟아주시오.”
변학도의 부인은 역시 배포가 컸어. 육방은 생각지도 않은 큰돈을 받자 곧장 남원으로 가지 않고 며칠 서울에 머물며 술집에서 자신들의 미담을 쏟아냈어. 그 미담이라는 게 거짓말이 포함되어있고 돈의 힘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본인들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부인,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어서 고맙소. 나를 업신여기고 파직시킨 이몽룡을 매장시켜주시오. 어사의 명분으로 월권하여 내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니, 이번에는 반대로 부인이 돈의 힘으로 이몽룡에게 고통을 안겨주시오.”
변학도의 반격이 시작되자 이몽룡은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어. 변학도의 반격이 뭔지 궁금해? 당연히 뇌물이지. 뇌물이란 참으로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키지. 뇌물 받은 사람은 죄책감도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도 못하게 되지. 물론 아주 약간의 미안함은 잠시 머물지. 하지만 바람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먼지 같은 미안함은 금방 잊어버리지. 사회악이 부정부패라는 사실을 다 알지만 일부 사람들이 좋아하여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어. 수천 년 내려온 슬픈 역사이고, 슬픈 역사는 악의 편이 승리했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지.

정확하게 변학도 부인의 돈의 힘 덕분에 소문은 바람 타고 가다가 그 내용이 폭풍이 되어 걷잡을 수 없게끔 순식간에 폭우처럼 쏟아졌어.
기방, 저잣거리, 시장, 빨래터, 술집 등 어딜 가나 온통 변학도와 춘향이 얘기뿐이었어. 천민인 기생이 정렬부인이 되자, 춘향을 질투하는 배 아픈 사람들이 거짓을 진실처럼 꾸며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소문나기도 했어.
그중에는 평소에 변학도의 도움을 받은 자들이 변학도가 억울하다는 쪽으로 몰아갔지. 소문이란 원래 거짓에다 자기감정을 섞어 색깔을 덧씌워 더럽게 포장해서 급속도로 퍼지거든. 없는 말을 보태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서 한집 건너고 두 집 건너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경우가 있어. 천민이라는 이유로 춘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신혼인 춘향이가 불쌍해.

“대감, 소문 들으셨습니까?”
“소문이라니?”
“저잣거리에 떠도는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우리 기방의 술안주 감인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같은 천민끼리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기생들이 앞 다투어 춘향을 모함했어.
“그리 큰 소문이라면 어디 말해 보거라.”
양반들은 무관심한체하며 귀가 솔깃했지.
“남원에서 왔다는 춘향이가 정렬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대감께서도 아시겠지만, 얼굴만큼 성질이 고약하다는 것도 아시는지요? 변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 들라고 한 게 죄는 아니지요. 이 도령이 어사가 되어 나타나자 춘향이가 겁이 나서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변 사또가 기생에게 수청 들라고 한 것은 죄가 아니긴 하지.”
양반들이 대부분 기생집에 다녀서 수긍했어.
“변 사또는 애처가라서 기방에 가도 기생들의 손 한번 잡지 않는 샌님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그런 불명예를 안게 되셨는지 모두가 변 사또가 억울하다고 동정합니다. 춘향이가 미모로 여러 사람 잡는 것이지요.”
남의 얘기는 구수한 이야기처럼 재미로 말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장점이 있어. 그럴듯하게 꾸며내면 마치 사실처럼 들리기도 하지. 소문이라는 말로 책임감 없이 서로 앞 다투어 옛날 이야기하듯 쉽게 말했어.
“동부승지가 며느리 때문에 욕을 보게 생겼구나. 애초에 천민이 신분 상승을 노리고 양반이 되려 한 것이 잘못이다. 정절을 지켰다는 기생은 보지 못했다. 또한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믿지 말거라.”
“대감께서는 변 사또께서 잘못이 있다고 보십니까?”
“내가 아는 변 사또는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절세미인을 마주하면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본인만 알 뿐이니 내가 가타부타 말할 입장은 아닌 듯하구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사리 판단을 해서 애매하게 말하지만, 평민들은 마치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자꾸만 나쁜 쪽으로 몰고 갔어.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게 일부 사람들의 습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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