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룡은 성격이 워낙 강직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하는 성격이라 많은 사람이 멀리했어.
새로운 임금은 몸이 허약해서 병석에 눕는 일이 많아지자 이몽룡의 직언을 싫어했어.
“나라가 어지럽다보니 매관매직을 하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어지니 그들을 벌하여 주시고 귀양 보내소서.”
눈치 없이 이몽룡은 바른말만 되풀이했어.
“물러가 있으라. 과인이 나으면 해결할 것이오.”
몸이 아픈 왕은 시도 때도 없이 상소를 올리는 이몽룡이 귀찮았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지금 내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만하시오. 과인이 나으면 그때 다 해결하리다.”
임금은 이제 대놓고 짜증을 냈어. 이몽룡은 나름대로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임금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타협 대신 벌하라고만 상소하는 이조판서가 싫었어. 자연적으로 이몽룡의 적은 점점 많아졌지.

몽룡과 춘향이가 꿈꾸었던 신혼생활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말았어.
춘향이는 눈을 뜨면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었어. 차라리 남원에서 살 때가 더 행복했다고 생각되었어. 가세는 점점 기울고, 남들과 타협하지 못하고 올곧은 말만 하는 남편과 대립이 많아졌어.
“둥글둥글하게 남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남이 부정부패를 해도 못 본체 눈감고 삽시다. 왜 당신만 욕먹어가며 힘들게 살아가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제발, 우리도 편하게 삽시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자가 어찌 불의에 눈감고 살기를 바라는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오.”
“변학도 그자가 요즘 대세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나와의 악연이 있었다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십시오. 그자와 싸우려고도 하지 마시고 못 본 체 넘어가시지요.”
“그자가 내게 어떻게 누명을 씌우는지 아시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는 자요. 나는 용서 못하오.”
이몽룡은 변학도가 하는 일을 알면서도 막지 못해서 분했어.

“이게 뉘시오? 이조판서 대감 아니시오? 내가 누군지 아시겠소?”
변학도가 우연을 가장하여 이몽룡 앞에 서서 빈정거렸어.
“이번에 돈으로 관직을 산 변학도 호조판서가 아닙니까?”
이몽룡은 변학도를 보자 심기가 불편했어.
“맞소이다. 기억력이 좋구려. 남원에서 나를 봉고파직 시킨 그 대단한 이 도령이 어사가 되어 내 인생을 바꿔 놓았지요. 그래, 요즘 살기가 어떠신가? 듣기로는 살림이 어렵다고 하던데.”
여유를 부리며 비수 같은 말을 하는 변학도를 혼내주고 싶지만, 같은 판서 대열에 올라서 참으려고 침을 꿀꺽 삼켰어.
“남 걱정도 하시는 것을 보니 여유가 많으신가 보오. 남원에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부자가 되더니, 그 더러운 돈으로 관직을 사서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니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리다.”
“여전하시군. 뇌물로 관직을 산 것은 맞지만 그까짓 남원에서 번 돈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오해요. 그 전부터 나는 상선이 두 척이나 있었고 모두가 인정하는 부자였는데 그 말은 인정하기 싫은가 보구려. 아무튼, 그대 덕분에 내가 이 자리까지 왔으니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군. 그때 남원에서 나를 그냥 두었다면 아직도 낮은 관직에 머물렀을 텐데 나를 봉고파직 시켜서 너무 억울하고 열 받아서 이를 악물고 출세했지.”
“돈으로 출세했겠지.”
이몽룡이 입을 삐죽거리며 빈정거렸어.
“물론이지. 나는 돈을 주고받을 땐 늘 두 손으로 받지. 돈은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권력을 주고 명예를 주었지.”
“더러운 돈으로 관직을 사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구려.”
“돈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은 돈의 위력에 굴복하지만, 돈을 귀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영원한 부귀와 명예를 주지. 혼자서만 떳떳하고 청렴결백하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가. 사람이 사는 곳엔 깨끗한 것도 있지만 더러운 것도 있다네. 혼자 잘났다고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게.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내 허물도 덮어주는 법. 세상을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시게. 부인이 춘향이라고 했던가? 세월이 흘러도 그 미모는 변함없는지 한번 보고 싶소.”
“남의 부인이 왜 보고 싶은 거요?”
“남원에 있을 때 적적해서 수청 들라고 했더니 악담을 했었지. 요즘도 성격이 그때처럼 표독스러운가 싶어 묻는 거요. 내가 준 선물만 고스란히 받고 수청은 거절했었지. 참으로 영악하고 성깔이 더러웠지.”
“이보시오, 말조심하시오.”
“나는 지난날 얘기를 솔직히 말해본 것뿐이오. 내가 가진 건 돈밖에 없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부인을 내 집에 보내시오. 옛정을 생각해서 도와주리다.”
“돈이 그렇게 좋으시오? 걱정 마시오. 그대 도움은 필요 없소이다.”
이몽룡은 자존심이 무너지며 치욕을 느꼈어.
“이 세상에 돈보다 더 좋은 게 뭐라고 생각하시오? 돈이 많으면 행복도 살 수 있고, 제철이 아닌 비싼 과일도 고급 비단도 주머니 사정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살 수 있지. 돈을 무시하지 마시오. 정확하게 돈의 막강한 힘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오.”
변학도의 돈의 철학에 이몽룡은 너무 화가 났어. 변학도의 언행과 행실을 벌주지 못한 게 한이 맺힐 정도였어.

변학도는 이몽룡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돈으로 왕따를 시킨 거지. 이몽룡은 슬프게도 동료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어. 양반에게 돈과 명예가 없으면 기가 죽고 세상을 비관하게 돼.
“이 더러운 세상, 정의는 어디 가고 악의 소굴만 남았단 말인가.”
춘향이는 정렬부인이라는 호칭이 호강이 아니라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남편을 설득했어. 세상 원망하는 살아가는 이몽룡에게 희망을 주고자 결정을 내렸어.
“서방님, 우리는 아직 젊으니 잠시 물러나 있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을듯합니다. 변학도보다는 우리가 더 오래 살 테니, 세상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권세에 밀리지만 언젠가는 변학도도 늙고 병들면 물러나게 됩니다. 기다리시지요. 민심이 천심이라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돈이 최고라는 기회주의자를 이기게 되는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참고 살아온 세월을 꿋꿋하게 견딘 춘향의 충고에 이몽룡은 고개를 끄덕였어.
“부인의 말이 옳은듯하오. 돈이 정의를 이길 수는 없으니 다음을 기다리리다. 반드시 이 나라는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오.”
이몽룡은 작은 희망을 가지고 밝은 세상을 기다리기로 했어.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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