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변학도의 부인은 이번 회의에는 지난번과는 달리 수장들과 자식들까지 불러 모았어. 사건의 진실을 듣고 싶어 육방도 참석시켰지.
“그대들은 남원에서 변 사또를 모신 사람들이오. 솔직하게 말한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나 거짓이 있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오. 잘못이 있는데도 변 사또를 옹호한다거나 변명한다면 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남원에서 변 사또의 여자관계를 다 사실대로 말하시오.”
덩치가 커다란 수장이 큰 소리로 말하자 육방은 벌벌 떨었어. 자신들의 말 한마디에 변 사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 분위기가 엄숙하고 무거워서 서로 눈치만 살폈어. 자신들은 이미 예전에 변 사또에게 충성을 맹세한 서약서를 쓴 터라 배신은 있을 수 없다고 눈빛을 주고받았어. 변 사또 덕분에 자기 자식들이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기에 의리를 지키고 싶었어.

“소인은 형방입니다. 춘향은 독버섯처럼 위험했지만, 외모가 절세미인이다 보니 인기가 많았습니다. 사실, 피해자는 사또인데 소문이 이상하게 퍼졌습니다. 관아에 기생이 여럿이 있었지만, 사또께서는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형방이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었어.
“누굴 바보로 아는가? 사지가 멀쩡한 사내가 기생을 멀리한다는 얘긴 듣지 못했소. 괜히 편들어주다가는 큰 코 다칠 거요. 솔직히 말하시오.”
다른 수장이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어.
“사실입니다. 사또께서는 정무에 늘 바쁘셨고 기생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관아의 기생들은 사또를 위해 있었지만 동침한 사실은 한 번도 없어서 기생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기생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춘향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시오.”
“소인은 이방입니다. 춘향은 기생 딸인데 미모만큼 성격도 악랄합니다. 이 도령과 둘이 언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춘향이 양반이 되고 싶어서 순진한 이 도령에게 술을 먹이고, 어미인 월매가 협박해서 서약서를 받아냈습니다. 월매는 그 서약서를 동네 사람들에게 보이며 자랑했었지요. 이 도령은 한양에 간 후에는 소식도 한 장 없었습니다. 확인해 보면 아시겠지만, 이 도령은 그 당시 중매쟁이들이 꽉 찼다고 할 정도로 명문 가문들과 혼담이 오갔지요. 사실 춘향인 이 도령의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지만, 절세미인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콧대가 높았습니다.”
이방은 선물만 받고 수청을 거절한 춘향이가 얄밉고 원망스러웠어. 수청만 들었으면 자신에게 돌아올 상이 많았을 텐데 그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서 아까웠지. 자신이 월매에게 공을 얼마나 들였는데 모두 허사가 되자 춘향에 대한 미움이 아주 컸었거든.

“소인은 호방입니다. 변 사또께서 춘향을 보시고 수청을 들라고 하신 건 사실입니다. 기생은 수청을 드는 게 당연하기에 법에 저촉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춘향은 미모만큼 성질도 모질고 독한 데가 있어 백성들 앞에서 사또에게 모욕감을 주고 무시하고 악담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변 사또께서는 수청 들라는 말만 했을 뿐 손도 잡지 않았는데 동네방네 소문내고 악담을 퍼부어 하옥시켰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는 변 사또십니다. 춘향이는 평소에도 제 미모만 믿고 위아래 구분 없이 행동했는데, 이 도령을 만나고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본처처럼 행동해서 모두 걱정을 했었지요. 월매가 자랑하듯 소문내어 말하면 오히려 이웃들은 이한림 사또께서 아실까 봐 쉬쉬하며 감추느라 진땀을 흘렸지요. 그때까지도 이한림 사또께서는 아들의 사랑 놀음을 모르고 계셨지요. 한양으로 영전되어 가신 후에야 이 도령의 사정을 알고 다른 혼처를 알아본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도령은 한양으로 간 뒤 소식한 번 없었지요. 이런저런 속상한 상황에 놓여있던 춘향이는 변 사또의 수청 얘기가 나오자 평소 성격이 모질고 독하여 악을 쓰며 화풀이 한 것입니다. 백성들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 도령에게 버림받은 춘향이를 동정하여 소문이 이상하게 났습니다.”
호방과 이방이 흥분하며 말했어. 너무 자세하게 말해서 마치 현장에서 춘향의 행동을 보는듯했어.

“소인은 예방입니다. 이 도령은 어사가 되어 왔다가 옛 여인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원래 자기 품 안에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다가,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 다시 빼앗고 싶은 게 사내 마음입니다. 한양으로 떠난 후 한 번도 연락이 없다가 어사가 되자 우연히 다시 재회한 것입니다. 옛 여인을 찾고 싶어 어사로서 월권하신 겁니다. 질투하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변 사또를 봉고파직 시켰습니다.”
예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방이 말했어.
“양반과 기생 딸의 인연을 이한림 부사께서 인정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락을 안 하다가 어사 신분이면 첩을 얻어도 흉이 되지 않으니까요. 변 사또께서는 어찌 보면 그들의 사랑 놀음에 엮이게 된 피해자이십니다. 관내에는 미모가 뛰어난 기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변 사또께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 기생들의 원성이 높았습니다. 기생이 수청 들면 기록이 남는데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확인해 보시면 금방 아실 것입니다.”
사실을 진술할 땐 누구든 떳떳하지. 지켜보던 사람들이 반신반의 했어.
“한 치의 거짓도 없으렷다?”
수장의 물음에 육방이 한목소리로 대답했어.
“맹세합니다.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변학도 부인은 안심이 되었어. 남편의 억울함도 풀고 명예 회복도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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