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귀 좀 빌려주세요


사랑은 속삭이는 동사로 읽는다

당신의 귀가 나를 향해 열리던
모음의 날들은
이제 돌아오지 않나요?
내 귀는 시들어 떨어지기 직전이에요

선글라스, 마스크, 이어폰, 귀걸이
귀에서만 서식하는 저 기표들은
눈만 남은 내 체온을 끌어올리는데
사랑이 어떻게 비대면 될 수 있나요?

입을 막았을 뿐인데 귀까지 멀어진 나는
시들다 끝내 떨어져버릴 귀를 가진 나는
선글라스를 들고 마스크를 들고 이어폰을 드느라
당신을 불러 세울 수가 없어요

중략

당신은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자가 격리된 몇 개월이 납작한 채 흘러가요
누가 나를 꺼내 활짝 펴 주세요.

임경남 시집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에서 발췌

강아지 풀 꼬리가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키며 흔들리고 있을 즈음이면 습한 날들은 다 지나갔다고 보면 된다. 계절을 갈아입는 환절기에는 강아지 풀 꼬리처럼 마음이 분주해지기도 하는데 여전히 외출 할 때마다 엘리베이트 앞에서 깜빡한 마스크를 다시 찾아 써야 한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 이제는 마스크 없이 살아가던 지난날이 비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2002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플루 2012년의 메르스 등 인체를 향한 감염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 돼지열병, 구제역등 듣도 보도 못했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마을에 점차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가 퍼지고 처음 맞이하던 겨울쯤 이었다. 집에서 3km정도 떨어진 동네 도서관을 가기 위해 가방을 메고 선글라스, 귀걸이, 이어폰, 마스크까지 끼면서 “어머 내 귀 엄청 고생 하네” 라는 발상이 내게 와서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정말 ‘마스크를 끼지 않는 모음의 날들은 오지 않을까?’ 코로나 시기는 누구나 힘들었겠지만 요양병원의 어머니들에게는 치명적이었을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자식들의 얼굴을 보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을 텐데 유리창 너머에서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만 들어야 했던 어머니를 뵈며 “사랑이 어떻게 비대면 될 수 있나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최재천 생물학 박사는 한마디로 “지구상에 종種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인간이라는 종種이 너무 많다”라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발현한 사피엔스가 지구의 변방에 떠돌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을 점령하고 농업혁명을 일으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밀림을 불태웠고 밀림에 살던 동물들은 거처를 잃었다. 반드시 숙주를 필요로 하는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줄어든 동물 대신 인간으로 옮겨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 무슨 일이든 이유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까.

열대림에 살던 박쥐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온대림으로 옮겨 왔다. 아시다시피 온대림에는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이 살아가는 기압대지 않은가? 연구에 따르면 박쥐에게 100여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그 바이러스가 인간이 키우는 가축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코로나 19라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 99개의 바이러스기 밀려온다는 계산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공상과학 영화처럼 마스크 말고 방독면까지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마스크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금처럼, 마스크 끼던 시절을 그리워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생명의 질서 앞에 우리는 우리가 던지고 우리가 도로 받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쩍 마른 북극곰은 북극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을 잘 달래는 일은 지금 여기서 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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