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안녕, 안녕


아플 땐 유목의 언어를 써야해
단순해서 가벼워지는 말로
그래야 쉽게 날아오르거든
구름도 그렇게 날아올랐다가 소나기가 되는 거야
사랑도 이별도 싱겁게 해석되어야 해

유목의 연애가 아름다운 건 이별이 간편하기 때문이지

몸이 감옥인 사람들
저마다 깁스를 하고 링거를 달고
지루한 잠이나 기다리지

하얀 벽은 초조해 물감이라도 뿌리고 싶어

중략

한 차례의 내가 참았던 소나기로 뛰어내려야 해

임경남 시집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에서 발췌

어느 해 인가 3평짜리 텃밭농사를 한 적이 있다. 꽃밭처럼 키워야지 하고 시작한 것과 달리 어느새 출근이 되어 버렸다. 가을배추를 심고 자라는 동안 그걸 나 혼자만 먹겠다고 날마다 텃밭에 가서 벌레를 잡았다. 농약 대신 쪼그리고 앉아 벌레를 잡는 일은 배추에 살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끈으로 묶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날도 남편을 출근 시키고 강아지를 자전거에 태워 텃밭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벌레를 잡다가 일어서는데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회사 간 남편을 호출하고 병원에 실려 가고 야단도 아니었다. 디스크라니, 그동안 써 온 허리가 배추벌레 잡는 일로 폭발 한 것이다. 집에 가면 무슨 일이든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 이참에 며칠 입원하기로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영락없는 환자신세가 되고 말았다. 34일의 입원동안 잠 대신 뒤척거리는 나에게 이 시가 찾아 왔다.

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으로 약을 삼으라이 유명한 문장은 <보왕삼매경>의 첫 구절이다. 오십이 넘어 병이 생기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몸의 변화다. 젊은 시절에는 아파도 몸과 마음이 구분이 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마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하는 신호를 먼저 보내고 일어나던 엄마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엄마 왜 꼭 그 소리를 내고 일어나야 돼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너도 나이 들어봐라하셨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다니, 얼굴은 옛날 엄마 보다 젊어 보이지만 몸의 나이는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날마다 읽고 쓰는 일에 재미 들린 나는 허리가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파트 계단을 주 5일 하루에 30층 오르는 일은 내 허리를 달래는 귀중한 시간이고 마음을 추스르는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3년째 계단 오르기는 비가와도 추워도 더워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다.

운동은 에너지를 축적 하는 일이다.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어야 나에게도 남에게도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있다. 나는 계단 오르기 운동 전도사가 되었다. 시간을 따로 내고 운동복을 챙겨 입는 번거로움 대신 오직 내 의지 만으로 10~15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나이 들어도 근육을 유지 할 수 있고 심폐 기능을 좋게 하는 간편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운동을 나도 때때로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고 현관문을 째려볼 때가 있다. 세상 가장 먼 길이 소파에서 현관문 까지라는 사실, 하지만 지금까지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병(디스크)으로 약(계단 오르기)을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일상에 자꾸만 짜증이 생길 때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지, 친구에게 안부를 묻듯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보자. 이 세 가지가 잘 지켜질 때 자기 자신과 잘 지낼 수 있고 자기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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