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4월을 출력하지마라

싱싱한 바다, 해안선을 당겨오다 출렁하면
우리 집 거실까지 흘러넘친다

비명은 급성으로 오는가

미친 파도가 맨 종아리의 봄을 들이받자
어처구니없는 별들이 밤마다 내려와
항구의 어둠을 읽고 간다

누가 버튼을 눌렸는지
해마다 사월이 끝없이 출력된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2>를 읽고 있는 중이다. 18세기 조선 사회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던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려는 사람과 변화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당파에만 함몰되어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저자 이덕일은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독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단지, 반대 당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천재를 죽이지는 않은가?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은가?......”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했던 조선 사회는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당을 숙청하고 귀양 보냈다. 그 시대로부터 3세기가 흐른 지금은 어떤가?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던 사회에서 이제는 두 개의 생각으로 서로를 물어뜯으며 말로 처형을 하거나 말로 귀양 보내고 있다. 우리가 손잡고 당도해야할 곳은 여러 개의 생각이 함께 존재하는, 그래서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다. 또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흘러가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 전, 사회가 또 한 번 툭 부러지는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전시도 아니고 멀쩡한 나라에서 놀러 갔다가 죽어나가다니, 아무래도 우리는 집단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다시 정약용의 책으로 돌아가자. 그때 천주교가 서학을 앞세우며 조선 사회에 스며들고 있었다. 양반과 중인 몇 사람이 모여 의관을 갖추고 예배를 올리다 감찰에게 적발이 되자 양반들은 다 돌려보내고 중인만 귀양을 보낸다. 조선이 철저한 계급 사회인걸 감안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지는 어른이 없고 힘없는 (중인?) 사람만 구속되는 것을 보며 어쩌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대목에 이르자 소름이 돋았다.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는 건 참 아픈 일이다. 세월호 사건 때 안산 화랑유원지에 추모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뉴스를 통해 우리 곁은 떠난 아이들이 몇 명이라는 걸 숫자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끝도 없이 놓여 있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아득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많은 대륙 중에 어쩌다 대한민국이라는 데서 태어나보니 자연 자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땅, 오로지 내 자식 내가 교육시키며 경쟁을 통해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 경쟁은 더 한 경쟁을 낳으며 집단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덕분에 어디든 가면 코리아 넘버원이라는 엄지 척을 만나며 여행 내내 어깨가 으쓱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상처투성이다. 참으로 많이 할퀸 역사가 있었지만 어떤 큰 나라에도 복속되지 않고 독립 국가를 이루어 온 위대한 우리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경제를 일으켰고 가장 빨리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래서 큰 대자 字의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팔이 부러지면 제때 합당한 치료를 받고 깁스를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뼈는 표 없이 붙는다. 하지만 합당한 치료를 받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팔은 흉터를 남기고 굽은 채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입에 다시 떠올리기조차 힘든 사고가 얼마나 많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책임지는 어른 하나 없이 덜렁거리는 팔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매스컴이 조용해 질 무렵 이 시가 나에게로 왔다. 시인들은 각자의 눈으로 참으로 많은 세월호에 대한 시를 썼다. 또 다시 부러진 사회를 붙들고 시를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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