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변비


시를 누고 싶었다
시의 일이란 쉽게 마려워지지 않는 것
생각의 섬유질이라든가
형용사의 수분 함량이라든가
하루 종일 시집을 들이켜도
글자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는 문장이 있다

넘길수록 늘어나는 페이지는 신호 대기 중
사방이 불편한 냄새로 쌓인다
더부룩한 아랫배는
관념을 빠져 나오지 못해 점점 단단해 진다

한낮을 목 졸라 봐도
비명하나 터지지 않아
누군가 다 써먹어버린 詩의 이면지 같은 날들
표절이라도 저지르고 싶어
나를 막고 있는 딱딱한 품사들 트름만 돋고 있다

시인이라면 누구든 한 번씩 詩의 변비를 겪는다. 간절히 詩 하나 누고 싶은 날, 하루 종일 詩를 읽고 있지만 시감(시의 소재)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들쑤시다가 하루가 훌쩍 가버리는 날은 변비보다 더한 더부룩함에 시달린다. 타박고구마를 물 없이 두 개 먹은 기분이랄까 원고 청탁을 받아 마감에 쫓기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싶은데 시를 누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일 때 이 詩가 나에게로 왔다.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를 거르지 않고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고 적당하게 물도 마셔야 하고 섬유질의 시간도 가져야 자연스럽게 변비에서 탈출 할 수 있다. 시도 마찬 가지다. 좋은 시를 읽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뇌가 시적인 모드로 활성화 되어 있어야 한다. 제목을 정하고 그 제목에 대해 시적 화자가 무슨 메시지를 줄려고 하는지가 정확하게 서 있어야 그다음 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확장 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일상을 사는 일은 여러 가지의 번거로움이 생겨나 詩로만 머무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범죄자는 늘 범죄의 일에만 머리를 쓰다 보니 범죄의 뇌가 활성화 되어 날로 진화하는 것이다. 생선장사도 마찬가지다. 생선 생각만 하기 때문에 생선의 표정만 봐도 잘 팔릴 물건인지 안 팔릴 물건인지 혹은, 손님의 표정만 봐도 살 사람인지 그냥 갈 사람인지 판단하게 된다. 이처럼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그 일에 진심으로 10년 이상만 보내게 되면 전문가가 된다. 소위 일 만 번의 법칙이라는 게 몇 년 전까지는 유행했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빨라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요즈음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해서 전문가와 초보의 사이를 좁힐 만큼 긴 시간의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로 깊은 맛은 프로에게서 나온다. 시의 일이란 10년의 세월 보다 얼마나 시에 대해서 몰입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시의 소재 하나를 잡고 깊이깊이 들어가 보는 일은 여전히 가슴 떨리고 설레고 두려운 일이다.

詩란 글로 그림을 그려서 독자에게 펴 보이는 일이다. 詩의 한 문장이 독자에게 한 편의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을 때 독자에게 상상이라는 여백을 선물 할 수 있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시인이 풀어야할 숙제다. ‘사랑한다’, ‘슬프다’, ‘외롭다’라는 관념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주지 않는 어쩌면 시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독자의 감정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문장으로 개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령 ‘사랑한다’는 말 보다 ‘커피 잔에 당신이 떠올랐다’ 라든지 ‘슬프다’라는 말 대신 ‘자주 목젖이 아팠다’ 혹은 ‘기쁘다’라는 말 대신 ‘너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봄이 된다’ 라든지 그 감정의 상황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내 감정을 그리는 일, 그래서 시를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내 안에 자그마한 詩의 씨앗을 늘 가꾸어 가는 수밖에 없다. 꿈은 도착에 있는 게 아니라 과정에 있으므로, 그 과정이 즐거워지는 일에 진심으로 복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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