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뉴스


서문시장 불이 뉴스를 달군다
동동걸음마저 타버려 건질 것 하나 없는 저녁
현장기자의 허탈한 표정에도 그을음이 배어있다
발화지점은 비밀이고 비밀은 급성으로 자라난다
활활 타오르는 어처구니들
소방대원들은 물 젖은 하루를 잘 말려 입었을까
산산조각을 붙잡은 손들이 쿨럭거린다
싱싱한 등짐이 사라진 지금 붉은 비가 내리는데
12월의 찬바람을 퍼내고 나면 다시 봄이 올까
나는 불탄 자리에 시간의 숲을 걸어두고
잘 마른 슬픔이 꽃으로 피어나는 기도를 올린다
마감뉴스가 밤늦도록 마감을 못 한 채 요란하다

뉴스는 날마다 생산되고 날마다 소비된다. 몇 년 전 대구에 있는 서문시장에 큰 화재가 생겨 며칠 동안 뉴스로 도배 한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사건 사고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고가 터지고 나면 대책 본부가 생기고 책임자를 처벌한답시고 변죽만 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뻔한 멘트들을 끝으로 다시 조용해진다.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늘 똑같이 적용되어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사건들은 다시 반복되어 왔다. 얼마나 더 희생되어야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게 될까? 선진국이란 경제지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통치를 하는 사람도 통치를 받는 사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회적인 자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건사고와 같은 부정적인 뉴스에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은 인간의 뇌가 부정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유달리 유튜브 채널도 공영방송 채널에도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은 걸 보면 그것을 소비하는 인구들도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부정적인 것은 자동으로 세팅 되어 있어 저절로 반응하지만 긍정적인 것은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써서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도 예수님도 늘 깨어 있으라고 가르쳤나보다.

남편과 나는 해마다 망년회를 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새 다이어리를 놓고 지난해 약속했던 일을 몇 프로나 실행했는지, 새해는 무엇을 다시 할 것인지를 정하고 우리 가족의 10대 뉴스도 발표했다. ‘다이어트, 영어공부, 책 읽기’는 해마다 단골 메뉴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 한 것은 뭔가 함께 시작 하고 함께 매듭을 짓는 다는 의미가 더 컸었다. 역으로 생각하면,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말마다 체크가 필요했던 것이고 실행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또 하나, 한 해 동안 ‘우리 가정의 10대 뉴스’를 각자 쓰고 발표하는 일은 아주 재미난 프로그램이다. 단출한 살림살이에 10대 뉴스까지 갈 것도 없지만 그걸 발표하면서 웃고 보낸 기억은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뉴스를 만들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도 오늘 하루, 나만의 뉴스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감사명상을 들으며 아파트계단 30층 오르기를 했다. 한 계단 한 계단에 집중하며 걷는 일은 하루를 여는 신성한 의식이다. 3년 째, 계단 오르기로 나는 아주 건강해졌고 좀처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아침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 한 잔 들고 나에게로 출근 하는 일상이 달콤하다. 창밖에는 이파리를 떠난 보낸 겨울나무가 오롯이 존재 그자체로 남았다. 오늘 내 뉴스에는 어떤 돌발 인물이 등장 할지, 어떤 돌발 사건이 생겨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 뉴스의 규칙이 있다면 의식적인 에너지를 써서 긍정모드로 나가는 것이다. 간혹 기쁜 일도 생겨 남편에게 빅뉴~스를 날리는 날에는 상대방까지 들뜬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어 조용하던 일상이 한 번쯤 출렁 해보는 것이다. 애쓰고 찾아야 보이는 굿 뉴스와 저절로 생겨나는 베드 뉴스가운데 어디다 시선을 돌릴 것인지 그건 개인이 선택해야할 몫이다. 오늘 내 뉴스의 헤드라인은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되어야 한다’ 는 플라톤의 말에 깊이 밑줄 긋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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