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크리스마스 반딧불이


시를 수놓는 남자가 혼자 산골에서 깜빡거려요
때때로 말문이 막히는 그곳은
6월이면 말 대신 반딧불 트리가 자라나죠
밤마다 트리를 켜놓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어둠을 먼 숲으로 흘러 보내고는
젖은 제 꽁무니를 털어 타박타박 잠이 드는 남자
매일 밤 이브의 문자를 보내와요
나는 푸른 잎사귀를 쌓인 38번 국도를 따라
애인을 켜러가요
굳어버린 입술을 열고 들어가면
잠긴 말들이 풀려나와
가만히 내 무릎을 엿들어요
무릎에 쌓인 크리스마스가 어둠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밤하늘에도 숲에도 트리가 켜져요
개구리 소리 내 어깨를 감싸 안는 밤
우리는 손잡고 먼 숲으로 떠나요
나는 당신의 붉은 알을 낳고
당신은 내 꽁무니 아래서 깜빡깜빡 시를 수놓고

내가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한 겨울, 짱짱한 추위 속에 있었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넘쳐났고 트리가 반짝이는 겨울나무 사이를 애인과 손잡고 걸을 때는 마치 성냥불이 켜지는 순간 행복한 과거를 떠올리던 성냥팔이 아이의 감정처럼 아련해 졌다. 20여 년 전 사이판의 크리스마스는 이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아닌 우거진 잎사귀에 섞여 반짝거리는 트리라니...... 그 여행은 낯설게 하기의 기법처럼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여름날, 일상처럼 봐 왔던 어린 날의 반딧불이를 우연히 바라보며 사이판의 크리마스 트리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반딧불이는 그렇게 나에게 와서 시가 되었다.

붉은 알을 포기 하지 못한 나는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애인 대신 여전히 시를 짝사랑 중이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반짝이는 것들은 오래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지만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생존만 들어 있는 삶은 사이드브레이크를 걸어놓은 것처럼 뻑뻑하다. 먹고 사는 일 이 외에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사과씨 만한 재능을 찾아내 갈고 닦는다면 평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갈고 닦았을 때 보물이 되듯 재능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즈음 이 보물을 찾아 다시 삶에 활력을 찾는 일은 제대로 삶을 반짝거리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사과씨를 찾아 키우는 중이다. 아침 일찍 노트북을 들고 찾아온 이곳에 커피향이 가득하다. 마침 창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저 골목길을 지나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나타샤가 벌컥 문을 열고 찾아 올 것만 같다. 아침 운동을 끝냈고 지난 주 읽은 책 가바사와 시온의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독후감을 마쳤고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메너리즘에 빠져 꼿꼿이 세우지 못한 마음을 다시 리셋 중이다.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물리적인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스스로 제 삶에 트리를 켤 줄 안다면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의 트리를 반짝반짝 켜고 있는 지금, 한 겨울의 반딧불이가 수묵화처럼 번지는 풍경 속으로 떼 지어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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