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남 시인


연어, 포장마차로 회귀하다


그가 행복하냐고 물었다
뜨거운 그 무엇이 전류처럼 확 달아오르고 있을 때

찬바람이 불면
레나강을 돌아나온 해류를 따라
북극해에서 아시아로 헤엄쳐 가는
머나먼 여정

등지느러미에 물비늘 같은 꿈을 키워가며
어머니의 어머니가 일러준
모천회귀를 사는 것

어미의 강 어느 기슭에서
산고의 아픔으로 죽어가는 것보다
골목길 포장마차에다 바다를 훌쩍 옮겨와
찬 소주잔 기울이는 막막한 목구멍에
한 점 따뜻한 위안이 되는 거라

물비늘 산란하던 그 부근을
탁탁 튀어 오르기도 하면서

명절의 기쁨은 어린 날 일찌감치 다 소진해버렸다. 어른의 명절이란 후딱 해치워야할 숙제 같은 것이고 고속도로에서 8시간 이상 밀리면서 가는 고향 길은 고행 길이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어처럼 몸에 새겨진 DNA를 따라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어느 겨울, 제가 태어난 강 대신 아파트 입구에서 ‘황금 연어’ 빵으로 돌아온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 시가 나에게로 왔다. 다시 설이 가까워 오고 우리의 무의식은 고향 쪽으로 조금씩 몸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세상이 바뀌어 명절의 풍속도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원형은 연어 떼처럼 태어난 곳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돈 많은 조상을 둔 사람은 명절도 해외에서 모닝커피와 빵으로 모시고 돈이 없는 조상을 둔 사람들은 아예 모시지 않고 어중간한 조상을 모신 사람들만 우리처럼 여전히 전을 굽고 생선을 굽고 난리다.” 동서들끼리 이렇게 히죽거리며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재미도 있지만 맞벌이하느라 늘 바쁜 그녀들에게는 황금연휴를 이렇게 보내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아직 어른들이 주체가 되는 명절 제사에 맏며느리로서의 발언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문명으로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었고 무엇이든 모르는 게 없는 구글신 앞에 분명 20세기 연어와 21세기 연어는 달라질 것이다.

어제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초가지붕 아래서 찍은 아버지의 20대 사진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놀란 건 그 안에 우리 자매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거다. 남편도 나이 들수록 시아버지를 얼마나 닮아 가는지, 우리 모두는 거부할 수 없는 연어다. 모던 한 것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여겼던 젊은 시절에 비하면 기와집, 한옥 문살, 마당, 서까래가 드러나는 천정, 어릴 때 먹던 음식들로 취향도 입맛도 재편성 되는 것을 보면 내 안에 연어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있는 곳, 모천회귀를 따라 다시 8시간 이상 걸려 돌아가야 하는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 생을 늙히시느라 몸도 마음도 구부정해지신 부모님께 한 점 따뜻한 위안으로 돌아가 보는 것. 골목이 집을 찾아가듯, 내 안에 연어를 따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어쩌면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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