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허물어버린 집/문충성

허물어버린 집이 요즘
꿈속에 나타나 온다
할머니 어머니가 사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허물어버리면 안 될 집을 허물어버렸다
그 할머니 어머니 꿈속에 없어도
그 집이 꿈속에 나타나 온다
대추나무
감나무
당유자나무
산수국
매화나무
후피향나무
동백나무
채송화 몇 그루
저 멀리 혀 빼물고 헬레헬레
진돗개 진구가 나타나 온다
시간이 사라져 없는 풍경 속으로
오늘도 들어가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도
풍경이 된다 어느새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요즘 세상이 쉽게 변하고 쉽게 허물어지고 너무나 빠르게 손을 놓아 버린다.
편의(便宜)와 편리(便利)를 위해서다. 불편하면 던져 버리고 실컷 이용하다가 사소한 어긋남으로 손을 털어 버린다. 참 야박하다. 그들의 변명은 대강 이렇다. “나도 살아야지요.”
그럴까? 불편함을 던져버리는 행위가 과연 살기 위해서일까?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
友情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정(情)이다. 약속(約束)은 불편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인품(人品)이다. 은혜는 불편하더라도 갚아야 하는 도리인 것이다. 신의(信義), 역시 그렇다. 위의 단어들은 추상어에 담긴 구체성의 행동(行動)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정(情)이 있고, 인간적 품위가 있으며 신의를 행동으로 지키는 일이다. 어렵고 불편하지만 결코 허물어버려서는 안되는 귀중한 보물 상자인 것이다.
또 하나 허물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추억이 서린 옛집이다. 곰방대 문 할아버지가 계셨고, 투박한 손으로 머리 쓰다듬어주신 할머니가 사셨고, 가마솥에 군불 때고 계시던 다정한 어머니의 애틋한 미소가 있었으며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의 엄격한 눈매가 있는 옛집은 허물어져서는 안되는 것들 만 모여 있는 곳인데…어디 가서 찾을지 마음만 아련하다
그곳에서 정겨운 시간을 함께했던 감나무 그네, 매화꽃, 그 향기 밴 매화차, 겨울 동백꽃, 당유자, 후피향, 산수유나무랑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다, 그리운데…
이제는 그것을 추억하는 내가 그 속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한 장의 수채화로 남은 액자 속의 내가 있다. 진돗개 진구도 어느 새 내 곁에 풍경으로 남는다. <박모니카>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