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독을 묻었네
마당을 파고 김치 독을 묻었네
흙에서 난 배추를
흙으로 만든 독에 담아
다시 흙에 묻었네
흙은 독을 발효시키고
독은 배추를 발효시키고
배추는 나를 발효시킬 것이네
맛이 깊어질수록
독은 점점 제 속을 비워
나를 끌어당길 것이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나는 독 안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갈 것이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어렸을 적 넓은 마당이 있고 샘터가 있는 곳에서 살았다.
희부연한 새벽, 새들의 지저귐 소리, 감잎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었던 기억, 아슴하고 아련하다. 이제는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시멘트이거나 철근콘크리트에 둘러싸여 가슴 답답해하며 지내고 있다.
숨 쉴 공간마저 미세먼지에 위협당하고 있는 도시인들은 마당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흙이 있는 마당에서 흙을 파고, 흙에서 나고 자란 배추를, 흙으로 만든 독에다 넣고 흙 속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부인데 왠지 아련해지고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흙이 독을, 독이 배추를, 배추김치가 나를 익힌다는 것’ 발효의 과정을 거친 ‘익힘’이라니…
마당에 묻은 독에서 맛나게 익힌 배추김치를 꺼내 밥상에 올리기 전 한 자락 쭈욱 찢어서 한입 가득 씹었을 때 그 느낌이란, 그 시원한 아삭거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쾌한 소리였다. 김치냉장고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흙이 주는 맛’일 것이다. 과학적 발효는 자연이 주는 발효의 맛을 결코 낼 수 없다고 본다. 왜냐면 필연적으로 인간도 결국 흙이 되므로, 인간도 결국 흙의 맛에 속하므로, 흙의 사랑 법에 익숙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찌 금속이 그 흙의 사랑법을 알 수 있겠느냐고…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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