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규 사회2부 부국장(상주 담당)

춘추시대 중국 초나라 장 왕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절영지회는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초나라 장 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 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다. 연회가 한참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다.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고, 자신이 그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장 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 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공을 치하 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다. 이런 일로 처벌은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의 갓끈을 모두 잘라 버리도록 해라! 지금 일은 이 자유로운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불문토록 하겠다"고 했다.

장 왕은 먼저 후궁들의 마음을 다독여 연회장에서 내보냈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으니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어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리고 몇 해 뒤에 장 왕의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 전쟁에서 장 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 왕의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초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온몸이 붉은 피로 물들며 흡사 지옥의 야차처럼 용맹하게 싸워서 장 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장 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 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다. 그 장수는 장 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 왕에게 공손하게 큰절을 올렸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 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목숨은 폐하의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오늘, 이 전장에서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라고 했다. 군주의 덕이 초나라를 지키고 군주 자신의 목숨도 보존한 것이다.

정치(政治)란 바른 글(政)로 물과 같이 다스린다(治)는 뜻이다. 또 그 정치를 하는 사람을 위정자(爲政者)라 한다.

위정자(爲政者)는 모든 일에 정석을 따지고 분별하기보다 때로는 허물을 덮고 다독여 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를 인정해 주는 리더의 믿음과 배려는 불섶으로 뛰어들게 할 만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 이후 상주시를 넘어 삼천리 방방곡곡에 절영지회(絶纓之會)의 뜻처럼 남의 잘못을 헤아리고 장 왕의 품격을 갖춘 그런 위정자(爲政者)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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