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라선재 차은정 대표...'풍월주의 50찬' 재현해 체험여행 첫 선

▲ 차은정 라선재 대표

 

   
▲ 신라약선밥상

 

   
▲ 차은정 대표가 풍월주의 50찬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결부해 설명하고 있다.

 

   
▲ 풍월주의 50찬 첫 체험행사를 마치고 차은정 대표와 출연진들이 참가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 신라약선 다이닝

 

   
▲ 신라약선 다이닝

 

   
▲ 신라약선 다이닝

 

   
▲ 사다함과 미소의사랑이야기 연극의 한 장면

맛있게 먹은 음식이 보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또 이 땅에 사는 사람과 먹는 음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가 오천년을 이어오는 동안 우리 음식도 우리 몸에 가장 맞는 레시피를 찾아왔던 것이다.

고조선부터 부여, 삼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먹여야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며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왔다. 또 추석같은 때는 명절 음식을 어떻게 빚고 진열해 민족의 축제에 흥을 더할까를 고민해 왔다.

이러한 삼한의 음식 문화는 삼국이 신라로 통일된 후 '신라약선'이라는 장르로 집대성됐고, 그래서 신라의 전통음식이 '신라약선'이라 불리게 됐다.

경주 라선재의 차은정 대표는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 육류, 어패류, 장류 등을 버무려 국내외 모든 현대인들의 식감을 살려주고 건강을 찾아주는 신라약선 재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사람이다.

현곡면 용담로(443-51)에 소재한 라선재는 2018년 경주시 향토산업육성사업에 선정돼 시작됐다. 이듬해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와 MOU를 체결했다. 2020년 라선재농업회사법인이 발족했고, 차 대표는 대구경북지방 중소밴처기업청 여성기업에 선정됐다. 2021년 '풍월주의 50찬' 상표등록을 마쳤으며, 이듬해에 경주시로컬여행상품 아이디어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라선재는 짧지 않은 준비기간을 마치고 최근 풍월주의 50찬 여행상품 프로모션을 개시했다.

지난 9월15일 처음 공개된 경주체험여행 풍월주의 50찬은 1부 사다함과 미소의 사랑이야기 공연, 2부 서리꽃, 생명의 꽃을 피우는 '상화병' 만들기, 3부 돔배기 조림, 맥적 등 신라음식 다이닝으로 구성됐다.

첫 체험행사에 참석한 50여명의 사람들은 라선재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신라로의 타임머신에 탑승한 기분을 느꼈다.

차은정 대표가 샘플로 만들어져 있는 풍월주의 50찬 중 몇 개를 설명하자 모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시간이 더 많았다면, 50가지 찬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보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차은정 대표, '신라전통음식 명인 1호' 선정

차은정 대표는 새벽 미명마다 보문호반을 거닐며 사색을 해왔다고 한다. 경주보문관광단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첫 삽을 떴고, 서거하기 얼마 전에 맏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데리고 찾았던 곳이다.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을 사랑하는 딸과 함께 가보고 싶은 게 아버지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차 대표가 우리 고대 역사와 더불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첫 줄이 씌어진 보문호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 날을 시작한 지도 어언 17년이다.
 
차 대표는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한의사인 부친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약재를 접했다. 이후 음식의 과학성을 공부하기 위해 경희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약선음식의 계보와 체계화를 위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한의학과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2015년 말 경주시가 전통음식 재현과 계승을 위해 실시했던 '신라전통음식명인 1호'는 차은정 대표의 자리였다. 10여년 전 경주에 온 차 대표가 그간 보여준 전통음식에 대한 열정이 결실을 맺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신라전통음식명인 1호 선정이 더욱 뜻 깊은 것은 그녀가 불의의 질병에 시달려 생사를 헤매다가 새 삶을 살게 된 지 20년, 2006년부터 경주와 인연을 맺어 경주에 온 지 10년 만에 받은 순수하고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던 1997년, 학위를 받은 기쁨도 잠시였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했다. 생사를 넘나들면서 투병을 했다는 그녀는 "약선이라는 운명 같은 이 길을 걸어오기 위해 거쳐야 했던 관문이었을까?"라고 담담히 회고했다.

 그녀는 경주에 이사왔던 그해부터 매년 춘분과 추분이 되면 신라임금님들의 제사에 진설할 음식을 참봉들과 함께 준비하면서 '내 모습을 내가 봐도 참으로 기이해'라고 되뇌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서 사람마다 필연은 반드시 있으며, 그녀에게 신라전통음식명인 지정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식품영양학과 한의학을 융합한 '신라약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 하여 음식과 약은 근본이 같다고 했고 그 바탕에는 한의학적 음양오행 사상이 깔려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체질이 다르고 식품의 기미(氣味, 기운과 맛) 가 달라서 보리가 잘 맞는 체질, 찹쌀이 더 조화로운 체질, 율무가 효과적인 체질이 다르다. 또 소고기가 소화가 잘 되는 체질, 돼지고기를 먹으면 기운이 더 잘 나는 체질, 닭고기가 편안한 체질이 따로 있다.
 
서양의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이 없다고 했다. 무엇을 먹느냐 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인성도 바뀌고 성품도 변한다고 한다. 몸은 자연이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역행하면 병은 생기기 마련이다.

식품영양학과 한의학의 융합을 추구하는 차은정 대표의 음식 철학은 이처럼 경주에서 뚜렷하게 정립됐는데, 곧 신라약선(新羅藥膳)이다.

◇역사를 버무린 음식과 요리를 통한 식치

차은정 대표가 경주에 와서 또 하나 업그레이드한 개념은 '역사(歷史)'다. 천년고도 신라는 식치(食治)라 해 음식으로 다스리는 문화가 왕궁에서부터 전해오고 있어 그 원형을 복원하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무형문화재다.

차 대표는 또 약선음식의 원형인 식료찬요(食療纂要, 우리나라 최초의 식의학서) 보존회의 전수생들과 함께 한중문화교류 사절단으로서 활동했다.

 그녀가 한중교류 행사에서 쉴 새 없이 연구하고 활동하자 이를 본 동료와 중국인들이 "당신의 끝 모를 정열은 어디서 나오나"라고 의아해 했다고 전한다. 이에 그녀는 "나는 신라 음식문화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미쳐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녀는 "선현들이 해 놓은 일을 그저 나의 몸과 마음을 빌려서 하고 있을 뿐"이라며 "신라약선음식을 찾도록 아낌없는 용기와 격려를 준 경주시민들의 힘이 더 컸다"고 강조했다. 또 "이 재능이 조상들이 나에게 주신 크나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나니 삶과 존재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인이 찾고 즐기는 신라약선을 향한 정열

경주를 찾는 외국관광객들이 우리의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러 오는 요즘, 오히려 가까이 있는 지역민들이 약선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음식들을 먹어왔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그래서 차 대표는 2014년부터 신라약선음식 무료체험교실을 시작했다. 그 체험교실이 이어져 이번 경주체험교실 풍월주의 50찬의 바탕이 됐다.

 한 국가가 천년 이상의 왕권을 유지한 나라는 세계에서 4군데 밖에 없어 하늘의 축복인 만큼 경주는 더 이상 우리의 것만이 아니다.

 이제 불국사, 다보탑, 석굴암, 첨성대 등 유형문화재에 무형문화재의 옷을 입히고, 혼을 불어넣어 유무형 자산의 균형을 살리는 명실상부 세계일류 황금의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차 대표는 세계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신라의 또 하나의 찬란한 문화유산, 신라약선을 보여주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신라약선을 향한 그녀의 정열은 몸속을 감싼 신라 왕궁 '대장금(大長今)'의 DNA가 꿈틀대는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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