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春秋
간 큰 한수원

한수원 핵심부서 이전 논란에
경주 시민들 배신·상처 입어
여론 악화되자 해프닝 일단락
이웃도시 포항시도 우려 표명

공기업이 주민과 약속 외면땐
정부정책에 심각한 신뢰 추락
고준위 방폐장 건설 발등에불
한수원 처사 원전생태계 역행

최근 경주시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핵심 부서를 타 지역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돼 경주 시민들이 아연실색했다. 여론이 들끓자 한수원과 산업부가 부랴부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가 일단락 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출사업본부를 충북 오송역 인근으로의 이전을 실무진에서 검토한 것이 사실로 알려지면서 경주 시민들이 입은 상처는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5년 한수원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지역 선정 당시 경주시에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다. 2015년 8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주에만 있다. 총면적만 206만㎡로 200ℓ 드럼통 80만 개를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동경주 지역인 양북면에서는 2단계 표층처분시설과 3단계 매립형처분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중저준위 방폐장은 선정 당시 안전상의 이유로 전국 대부분 지자체가 유치를 반대하고 나선 바람에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주 시민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한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과 국가 에너지 정책에 필수불가결한 시설임을 인식하고 방페장 유치에 찬성했다.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 돼 한수원 본사 전체 직원의 17%에 달하는 220명이 근무하는 핵심 부서를 타 지역으로 이전하려고 한 사실에 대해 시민들은 심한 배신감과 함께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비록 한수원이 일으킨 파문이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어도 여진은 결코 작지 않다.
경주시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포항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포스코그룹 지주사 본사 이전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포항시는 이웃 도시 경주시에서 벌어진 사태가 결코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포항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강덕 시장도 이에 대해 크게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지역주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지역발전에 등을 돌린다면 정부 정책에 신뢰 저하를 초래하게 된다. 향후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에 제동이 걸릴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상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수원에 따르면 전국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고리원전 90.8%, 영광 한빛원전 81.5%, 울진 한울원전 80.5%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고리원전은 2028년, 영광 한빛원전과 울진 한울원전은 6~7년 후인 2030년이면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고준위 방폐장 설립은 국내 원전 산업 생존권 확보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에 불’이다. 다행히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부지 선정이다. 앞서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때처럼 전국 모든 지자체가 손사래를 친다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당시에는 경주 시민들이 방폐장 유치에 찬성을 해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방폐장 유치지역에 대해 지원사업이 제공되더라도 방폐장 수용 의사가 40%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방폐장 건설이 과거처럼 돈만 안겨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는 법이나 돈이 아니라 주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기업 한수원이 주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지역발전을 도외시한 처사를 한다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물 건너가고 만다.
예전 편집기자 시절 한수원이 한국수자원공사의 약자(略字)인지 한국수력원자력의 줄임말인지 헷갈려 종종 지적 받을 때가 있었다. 간혹 지금도 이를 혼동하는 후배들이 있는 걸 보면 필자 개인만의 무지는 아닌 것 같다.이름 만큼이나 아리송한 한수원의 간 큰 처사가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어도.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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