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주 하루는 집으로 가다가 집 앞 작은 공원 옆길에 벚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만개한 것은 아니지만 어둑어둑한 거리를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기엔 충분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흰꽃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겨보리라 생각했던 토요일에는 종일 비가 오고 차갑고 궂은 날씨가 계속되어 봄꽃의 기운을 만끽하진 못했다. 다행히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하느라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시내가 무척 복잡했다.

날씨 때문인지 벚꽃이 피지 않아 봄 같지 않는 봄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라도 피는 걸 보니 그래도 봄은 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만 예년보다 늦었다. 그나마 대구 포항 등 남쪽은 지금 이렇게 피었지만 서울 등 북쪽 지방에는 아직도 피지 않았다. 작년보다 늦게 핀 벚꽃으로 지자체들이 마련한 벚꽃축제가 이상하게 되었다는 뉴스들이 나온다. 주말에 열린 서울 여의도 벚꽃 축제가 벚꽃이 없어 썰렁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집앞 공원의 이 나무가 벚꽃인줄 몰랐다. 작년 이맘 때까지는 이쪽 길로 출퇴근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근무지가 바뀌어 출퇴근 길이 바뀌었다. 전 근무지에 갈 때 차를 몰고 운전하며 아파트의 다른 출구로 다녔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요즘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벚꽃이 피는 시기가 짧아서 꽃이 필 때가 아니면 나무를 보면서도 벚나무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벚꽃 시즌이 아닐 때 이 거리를 많이 다녔었지만 나무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벚나무는 꽃이 필 때가 아니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나무다. 그때는 다른 나무와 구분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로수들 중 벚나무가 많다.
벚꽃만 꽃이 아니다. 매화나 개나리는 벌써 몇 주 전에 핀 것 같은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벚꽃 편애는 좀 심한 것 같다. 단지 지금 한 때의 화려함을 위하여 심겨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벚꽃이 아니더라도 아직 피지 않은 다른 꽃도 많다. 꽃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많이 늦어진다. 아직 잎사귀가 나오지 않은 채 겨울의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작년의 마른 나뭇잎이 아직 붙어있는 나무도 있다. 심지어 일본뇌염이 추운날씨로 예년보다 7일 늦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올 봄은 조금 이상하다. 무엇인가 많이 늦어지는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초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거인의 정원' 이야기가 생각난다. 검색을 해보니 넓은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거인이 집을 떠났다가 7년만에 집에 오니 아이들이 정원에서 놀고 있기에 어린이를 쫒아 낸 후 높은 담을 쌓아서 막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그 이후 정원 안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당연히 꽃도 피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담 틈으로 한 아이가 와서 놀기에 놀도록 했더니 다시 꽃이 피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올해 봄이 늦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갊이 동화 속의 거인처럼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며 살았기에 얻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집단적으로 이기심 속에서 살고 있다.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거인처럼 강하게 되었지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거인의 정원처럼 남을 들어오지 못하게 무엇인가로 막다 보니 봄기운이 오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개방사회라서 인적 물적 교류는 하고 있지만 삶의 방식에서 이기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올해 봄에 꽃이 늦게 핀 이유는 물론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아직 날씨가 추운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기상현상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단들이 예전과 다르게 움직이며 정해진 패턴을 보이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자전에 영향을 주어 윤초를 늦춘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의 이러한 기후변화도 어쩌면 남을 배려하지 못한 생활 때문에 야기된 것일지도 모른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스스럼 없이 하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거인의 정원을 둘러싼 담이 되는 건 아닐까?

다행히 벚꽃은 피었다. 이제 다른 꽃도 필 것이다. 늦더라도 이렇게 벚꽃이 피는 걸 보니 날씨가 따뜻해진다면 진짜 봄을 맞을 것 같다.

내년에는 정상적으로 꽃이 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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