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기의 트렌디풋볼]

▲허영기(축구 칼럼니스트)

촉나라 개국황제 유비는 당대 최고의 군사 제갈공명을 얻고 마치 ‘수어지교(水魚之交)’와 같다는 말을 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하다는 이 고사는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뜻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궁합이란 중요한 요소다.

성격차이, 성향차이로 인해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에도 쉴 새 없이 다투는 연인이 있는가하면 무엇을 해도 죽이 잘 맞아서 메뉴 선택에 일사천리인 연인도 있을 것이다.

한 때는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의 인연이 하루아침에 끝나버릴 때도 있고 서로의 사랑을 잘 지켜내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에 골인, 백년가약을 맺는 인연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결혼이나 연애에서 중요시되는 궁합은 축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감독은 선수 하나로 인해 보다 폭넓게 전술을 구상할 수 있게 되고 선수 한명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전체적인 팀의 분위기나 성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에 선수는 본인의 장점과 스타일을 감독이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고 이를 극대화 시켜줄 수 있는지에 따라 그라운드 위에서 춤을 추게 될 수도 있고 시종일관 벤치만 달구며 그라운드를 바라만 봐야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감독과 선수는 한 배를 탔을 때 끊임없이 협력해야하는 공생관계다.

최근 유럽축구계에선 독일인 축구감독과 아시아인 선수의 애틋한 사제관계가 화제가 되었다.

카가와 신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존 아시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이며 위르겐 클롭은 세계가 인정하는 명장이다. 허나 이 사제가 현재의 명성을 얻게 되기까지에는 서로의 도움이 컸다.

#2부리그 선수출신이 독일 최고 명문팀 감독까지

위르겐 클롭은 세계가 인정하는 명장이다. 지금은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추앙받는 클롭이지만 그의 선수시절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1989년 당시 2부 리그에 소속된 마인츠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2001년 마인츠에서 은퇴를 선언, 선수시절 시작과 끝을 마인츠와 함께한 대표적인 의리파 원클럽맨이다.

2001년 선수 은퇴를 선언한 직후 마인츠 구단에 감독직을 제안 받아 공식적으로 감독 커리어를 쌓게 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를 전전하던 팀을 맡아 신인 감독답지 않은 적극성과 열정으로 팀의 기량을 꾸준히 발전시켰고 마침내 2003/04 시즌에는 마인츠를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중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마인츠는 07/08 시즌 16위의 성적으로 2부 리그로 다시 강등되고 말았고 클롭은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한다.

마인츠를 떠난 클롭은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는데 당시 명가의 힘을 잃고 나락의 길로 접어든 '꿀벌군단' 도르트문트의 러브콜이었다. 도르트문트는 무리한 투자로 인한 구단의 재정악화로 인해 몇 년간 극심한 성적부진에 시달리며 중위권을 전전하던 중이었다. 몸값이 높은 감독을 데려오기엔 구단의 재정이 넉넉지 않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도르트문트에게 있어 40세에 젊고 열정적인 위르겐 클롭은 최적의 감독 적임자였다. 클롭에게 있어서도 분데스리가 전통의 명문팀인 도르트문트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기에 팀이 부진한 것과는 별개로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도르트문트 사령탑으로 부임한 클롭은 대대적인 팀 보수작업에 들어가는데 팀의 빠듯한 재정상황을 고려해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양성하면서 2부 리그나 사실상 한물간 선수 등을 저렴한 이적료에 영입, 알짜배기 영입으로 자신의 팀을 만들어갔다. 이 시기에 영입된 선수들은 현재 도르트문트의 핵심멤버인 수보티치와 그로스크로이츠, 스벤 벤더, 훔멜스 등이다. 현재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한 이들을 당시에 모두 합쳐 1000만 유로에 영입했다는 점은 클롭의 선수 보는 눈이 얼마나 탁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선수단의 리빌딩 작업을 마친 클롭표 도르트문트는 부진했던 암흑기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2009/10 시즌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리그를 5위로 마감한다. 완전히 변모한 도르트문트의 모습에 언론사들은 연일 위르겐 클롭을 집중 조명했고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도르트문트는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꿈꾸며 다시 한 번 '숨은 진주 찾기'에 돌입한다.

#클롭의 눈에 들어온 풋내기 카가와 신지

위르겐 클롭의 영입은 대성공이었고 성적 역시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허나 팬들과 언론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클롭의 고민도 깊어졌다.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도르트문트에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구단의 지원에도 한계가 따랐다.

최소한의 자본만으로 저렴한 선수들을 영입하여 이를 극대화시켜야 했던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여러 선수들을 예의주시하던 중 당시 J리그 세레소 오사카 소속의 에이스 카가와 신지를 발견한다.

▲<사진출처 : 텔레그라프>

클롭의 레이더에 들어온 이 일본인 선수는 어린 나이에도 팀에서 가장 높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이 출중했고 사실상 세레소 오사카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래가 밝은 일본인 선수를 클롭은 높게 평가했고 곧바로 영입에 착수, 고작 5억원의 저렴한 이적료로 카가와 신지를 영입하게 된다.

#카가와 사용법

카가와의 축구 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클롭은 당시 도르트문트 유스팀에서 올라온 촉망받던 공격형 미드필더 마리오 괴체를 카가와 신지와 동선이 겹칠 것을 염두하여 측면자원으로 기용하고 카가와를 2선에 배치시킨다. 카가와는 2선에서 본인의 플레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선수였고 클롭은 이를 정확히 캐치해냈다. 카가와가 입단한 첫 시즌 도르트문트가 즐겨 사용하던 전술은 4-2-3-1 포메이션이었다. 최전방에서 루카스 바리오스가 주포로 활약하고 바로 아래 2선에서 카가와가 경우에 따라 쉐도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 역활을 겸하면서 사실상 팀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팀 공격의 중심이 된 카가와는 클롭의 전폭적인 지지 덕에 새로운 문화, 새로운 축구, 독일의 큰 선수들 틈에서 놀라울 정도로 단 기간에 적응해냈고 도르트문트 축구에도 금방 녹았다. 카가와는 프리시즌 경기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리그가 시작되자 초반부터 득점행진을 이어가며 동료들과의 호흡 역시 무리 없이 잘 소화했다. 비록 장기부상을 당하며 후반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전반기 카가와가 보여준 임팩트는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를 주목할 정도로 놀라웠다. 카가와 신지가 분데스리가에서 이토록 단 기간에 순조롭게 적응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볼터치가 간결하고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미스가 적은 선수이기 때문에 주변 동료들이 단 기간에 카가와를 신뢰하게 되었고 카가와 역시 동료들을 신뢰하며 최전방과 2선, 양 측면까지 많은 포지션에서 동료들과 스위칭하고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패스하며 본인의 강점인 연계플레이를 잘 수행했다. 괴체 카가와 크로이츠 바로 아래에선 누리 사힌과 벤더의 단단한 더블보란치가 중원과 수비사이를 잘 조율하며 도르트문트 공격진의 든든한 뒷받침이 돼주었다. 본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클롭 감독과 동료들 사이에서 카가와는 날개를 달았고 더욱 더 일취월장했다. 아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크게 주목받지 않았으나 이 5억 원짜리 아시아 선수는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냈고 분데스리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본인이 중심이 된 전술, 주변 동료들과의 호흡, 플레이스타일 등 모든 것들이 이상적으로 조화되면서 카가와 신지와 도르트문트는 일취월장하기 시작한다.

#도르트문트, 명가의 부활

새로 영입된 젊은 선수들의 높은 전술이해력과 안정된 경기력을 바탕으로 빠른 템포, 강한 프레싱 축구를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한 도르트문트는 2010-11 시즌 마침내 기나긴 침체에서 벋어나 9년 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컵인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린다.

불과 3년 전 리그 13위까지 추락했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빠른 성장이었다. 위르겐 클롭의 지휘아래 꿀벌군단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했고 한때 파산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았지만 주전 선수들을 대거이적 시키고 뼈를 깎아내는 아픔을 감수한 뒤 재건성공이었기에 도르트문트의 성과는 그 어떤 팀보다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10-11 시즌의 성과를 바탕으로 꿀벌군단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할 준비를 시작한다. 위르겐 클롭은 지난 시즌의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조금 더 강도 높은 압박과 빠른 템포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프리시즌 기간 동안 선수들을 강도높게 훈련시켰고 시즌이 시작되자 도르트문트는 지난 시즌보다 공수 양면에서 한층 더 날카롭고 견고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새 시즌이 시작되고 부상에서 돌아온 카가와 신지는 리그 2년 차 선수답게 한층 더 여유롭고 발전된 기량으로 도르트문트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지난 시즌 팀의 주포였던 루카스 바리오스가 부상으로 주춤하자 바리오스의 백업 공격수로 팀 우승에 일조한 레반도프스키가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한다.

주포의 부상은 도르트문트에게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레반도프스키는 바리오스의 공백이 무색해질 만큼 뛰어난 피니쉬 능력으로 수많은 득점을 양산했다.

위치선정이 좋고 비교적 문전 앞에서 침착하게 득점을 만들었던 바리오스였다면 레반도프스키는 바리오스보다 많은 활동량으로 자신의 자리에 얽매이지 않고 중앙, 양 측면까지 폭넓게 움직이면서 동료들과의 호흡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선수였다. 다재다능한 레반도프스키의 활약에 도르트문트는 덩달아 미드필더진까지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공격 시 선수들이 좀 더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간결한 패스로 득점과 연결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지난 시즌 도르트문트의 경기에서 공격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를 보면 상대가 지역방어를 펼칠 시 재대로 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상대 페널티 박스 주변을 겉도는 듯한 모습이 있었다. 허나 11-12시즌 도르트문트는 전 시즌과 상반되게 템포를 조금 더 빠르게 가져가면서 선수 간 주고받는 패스횟수는 많아도 볼을 최대한 끌지 않고 간결하게 가면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켰고 설령 공격진행 시 상대에게 볼을 빼앗겨도 많은 선수들이 달려와 벌떼처럼 강하게 압박하며 업그레이드 된 게겐프레싱(역압박)으로 상대의 숨통을 조였다.

중원에선 카가와 신지, 괴체 등 패스가 좋고 볼을 소유하는 능력 또한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움직이며 공격의 활로를 만들었고 최전방에선 레반도프스키라는 확실한 피니셔가 버티고 있으니 이것은 곧 금상첨화였다. 시즌을 거듭할 수록 팀이 상승세를 탔고 도르트문트는 리그 우승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 더불어 DFB 포칼컵(독일의 FA컵) 우승컵까지 들어 올리며 더블의 위업을 달성한다. 전통 명가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새로운 도전, 사제의 이별

지난 2년 동안 도르트문트는 이제 유럽축구계에서 가장 상대하기 꺼려지는 팀으로 여겨질 만큼 경기력을 인정받았으며 세계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고 카가와 신지 역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해있었다. 그렇게 언제나 순조로울 것 같았던 이 두 사람이었지만 12-13 시즌을 앞두고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중심이 된 카가와 신지는 분명 유럽 빅클럽들에겐 매력적인 카드였다. 어린 나이, 출중한 기량, 발전 가능성, 아시아 마케팅 효과까지 카가와를 영입함으로서 빅클럽들이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상당했다.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던 카가와 신지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였다. 이미 맨유는 이적시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도르트문트 경기에 몇 번의 시찰을 나가 카가와를 관찰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의 DFB 포칼컵 결승전이 있던 날에는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직접 경기 시찰을 나와 카가와를 지켜봤을 정도로 그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맨유였다. 시즌이 마무리 되고 맨유는 도르트문트에 카가와 신지 영입을 제안했고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카가와의 맨유 이적은 마무리 된다.

클롭은 팀의 중심이자 전성기에 접어드는 카가와를 보내는 게 크나큰 타격이었지만 이미 카가와는 도르트문트가 담기엔 커져버린 선수였다. 선수 본인 역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심이 강했기에 클롭이 그를 잡아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클롭은 훗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키가와를 떠나보내던 날 서로를 맞잡고 울었다고 한다. 이들 사제 간 관계가 얼마나 애틋하고 두터운 우정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찬밥신세가 된 카가와

맨유로 이적한 카가와는 프리시즌 경기부터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으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할 듯 보였다. 리그 개막전 선발출장을 시작으로 리그 초반 스타팅 멤버로 모습을 드러낸 카가와였지만 부상의 악재와 복귀 후 팀에서 입지가 줄어들면서 출전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도르트문트에서 보여준 파급력 있는 데뷔 시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이 리그 우승컵을 드는데 일조했고 거칠기로 소문난 프리미어리그에서 비교적 출전시간 대비 무난하게 잘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하는 번뜩이는 활약도 몇 경기에서 보여주었기에 팬들이 카가와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히 컸다.

그렇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심기일전하던 카가와였지만 뜻밖에 상황이 발생한다.

카가와를 맨유로 데려온 퍼거슨 감독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

퍼거슨의 후임 감독으로는 에버튼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자질을 인정받은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선임되었고 이는 곧 새 시즌을 기약하며 날아오르려던 카가와에게 독약이 되고 만다. 심기일전하며 프리시즌 기간 동안 컨디션을 조절한 카가와를 모예스 감독은 중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주전으로서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본인의 플랜에서 카가와를 큰 비중에 두지 않았던 모예스는 에버튼 시절 제자인 마루앙 펠라이니를 영입했고 겨울이적시장에서 카가와 신지와 경쟁 포지션의 후안 마타를 영입하며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카가와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린다. 마타의 영입으로 카가와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고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날이 많아진 카가와는 시즌 내내 자신감을 잃은 모습으로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모예스의 맨유는 퍼거슨 시절에 비해 현저하게 뒤쳐지는 경기력과 성적으로 비판받았고 시즌 막판 결국 경질되고 만다. 긴 벤치생활을 경험하던 카가와에게 기회가 돌아오나 했으나 월드컵 이후 맨유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네덜란드 출신 루이스 반할 역시 카가와를 철저히 외면했고 자신의 계획에 카가와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기나긴 시간, 출전을 보장받지 못한 카가와 신지는 마침내 이적을 결심한다.

#의리의 도르트문트, 제자를 다시 품은 클롭

맨유에서 전성기를 허송세월 보내던 카가와는 새로운 팀을 물색 중이었고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도르트문트와 클롭은 맨유에게 카가와 재영입을 제안한다.

이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카가와는 2년 전 이적료에 반값으로 다시 위르겐 클롭의 품에 안긴다. 마침 부상자가 많아 스쿼드에 금이 갔던 도르트문트에게 카가와는 꼭 필요한 존재였고 이 이적 건은 맨유와 도르트문트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것이었다.

2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카가와의 경기력에 언론은 의문을 품었지만 클롭 감독은 주중 리그 경기인 프라이부르크전에 카가와를 선발 기용했고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그라운드를 시종일관 누비며 1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다.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여준 스승과 팬들 앞에서 근육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카가와의 모습에 스승인 클롭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팬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2년 전 팀의 에이스였던 카가와 신지의 이름을 연호했다. 카가와 신지 주연에 영화 같은 복귀전이었다.

#주춤했던 도르트문트 이제 시작이다.

이번 시즌 도르트문트는 팀의 핵심 자원이었던 레반도프스키와 마리오 괴체를 뮌헨으로 보낸 후 한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의 부상자가 너무 많아 정상적인 스쿼드를 구축하는데 애를 먹었다. 팀의 에이스인 마르코 로이스를 포함하여 플레이메이커인 귄도간, 므키타리안 등 주전 전력들의 줄 부상으로 시즌 초반 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잘 풀리는 집은 뭘해도 잘 풀린다고 하지 않던가. 부상 병동이었던 도르트문트에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로이스-귄도간-므키타리안 등 팀의 주전 선수들이 연달아 복귀해주면서 지난 챔피언스 리그 3라운드 갈라타사라이 원정경기에서 4대0 대승을 거두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시즌 영입한 아드리안 라모스와 임모빌레 역시 팀에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팀의 새로운 주포로 올라선 패트릭 아우바메앙의 기세가 무섭다. 카가와 신지 역시 변화된 팀에 잘 녹아들고 있고 현재 부상명단에 올라있는 올리버 키르히와 브와슈치코프스키, 누리 사힌 등이 복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연이은 부상자 복귀로 선수층이 두터워진 도르트문트라면 리그 상 위원으로 올라가는 일은 단 기간에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도르트문트에겐 탁월한 지략가인 ‘명장’ 위르겐 클롭이 있고 클롭의 옆에는 ‘팀이 가장 좋았던 시절’ 애제자 카가와 신지가 있다. 수많은 동고동락을 함께했고 이별과 재회를 겪으며 더욱 더 각별해진 이 사제관계가 푸른 그라운드 위에서 ‘도르트문트 부활의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 :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

마치 그 때 그 찬란했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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