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대대로 명문 가문, 충신의 후예인 이한림은 동부승지라는 관직에 올라서 여기저기 명문가 여식들의 중매가 끊임없이 들어왔는데도, 아들 때문에 거절하게 되자 속이 타들어 가고 화병이 날 것 같았어.
“멍청한 놈, 명문가의 딸을 며느리로 봤으면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텐데 그까짓 기생 딸에게 눈이 멀어 집안을 망하게 하는구나.”
아들이 장원급제해서 경사가 났다고 좋아했다가 뜬금없이 춘향이를 데리고 오는 바람에 저잣거리의 놀림이 되어 분통이 터졌어. 나쁜 소문이 바람 타고 돌아다니다가 몽룡의 집 마당까지 들어왔어. 춘향은 하인들로부터 노골적으로 무시를 받았어. 춘향이 나타나면 하인들끼리 수군대다가 눈을 흘기고는 불러도 못 들은척했지.
“기생 딸인 주제에 언감생심 우리 도련님을 넘보다니. 더구나 정렬부인이라니. 천한 신분인 기생 딸이 신분 상승하려고 오죽 노력했겠어. 얼굴 하나 믿고 순진한 우리 도련님을 유혹한 거지.”
“소문 들었어? 우리 도련님에게 강제로 술 먹이고 협박해서 서약서를 받아냈대. 우리 도련님이 마지못해 혼인 한 거래.”
“누가 그래?”
“시장에 나가면 온통 우리 대감댁 얘기야. 알고 보니 봉고파직 당한 변 사또는 점잖고 부인만 아끼는 사람이래. 우리 정렬부인께서 유혹했다는 소문도 있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소문이 퍼져있어.”
“대감마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어찌 되는 거야?”
“아시면 큰일 나시지. 비밀이야.”
하인들끼리 모여서 수군거리며 춘향을 노골적으로 멸시했어.

“동부승지, 오랜만이오. 잘 지내셨소?”
병판 대감이 맺힌 게 많은지 일부러 동부승지를 찾아갔어.
“대감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동부승지께서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중매쟁이를 앞세워 사돈하자시더니 기껏 기생 딸을 며느리로 삼았더군요. 절세미인이라는 것을 내세워 남원에서 곱지 않은 수모를 당했다던데 소문이 고약하게 났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변학도는 내가 잘 아오. 그 사람은 기생을 유혹할 위인이 아니오. 부인과 금슬도 좋고 나와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소. 대감께서 며느리의 품행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에 감탄했소이다. 아무튼 내 여식과 엮이지 않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오.”
멸시하는 듯한 언사에 이한림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어.

이한림 부인도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
“자고로 집안에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고,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후부터 끊임없이 나쁜 소문이 들어오니 집안 어른들 보기가 부끄럽구나. 네가 알아서 친정으로 가 주면 안 되겠느냐?”
평소에도 시어머니는 춘향을 무시했는데 소문을 듣고 나서는 아예 춘향에게 대놓고 멸시했어.
“어머님, 저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춘향은 결백을 주장했어.
“잘못한 게 없다니, 내 집 문턱을 넘어온 그 자체가 잘못이다. 너로 인해 우리 집안이 망하게 생겼는데도 잘못이 없다고 하겠느냐?”
시어머니는 춘향을 쫓아내고 싶어서 언성이 높아졌어.
“억울합니다. 서방님을 사랑한 죄밖에 없습니다.”
“감히 기생 딸인 주제에 양반가의 아들을 유혹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죄다. 내 아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남원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도록 해라.”
춘향이는 사실 너무 억울했어. 양반 딸로 태어나지 못한 게 죄라면 죄였어. 시어머니의 차가운 멸시 속에 춘향은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어.

이한림은 문중 어른들에게 무더기로 질책을 받았어.
“집안을 망하게 하는 며느리를 내보내지 않으면 문중에서 자네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처신을 잘하시게.”
아들에게 말을 해도 듣지 않아 속상한데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며느리를 내쫓으라고 강요하니 더 괴로웠어. 그러나 아들은 소문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모두 거짓이오니 믿지 마십시오. 우리가 떳떳한데 남의 눈치를 살피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뜬소문을 믿지 말라고 했어.
이한림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만 보면 수군거리고 눈총을 주며 동정하는 표정을 짓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화병이 났고 결국 사직을 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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