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규 밝은정신문화센터원장

진리(眞理)를 안다고 떠벌리며, 세상에서 오래 살 장수(長壽)의 삶인 영생을 가슴 깊이 끌어 앉고, 그리고 진리를 통달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온 나에게 어느 날 작은 통증이 나를 깨웠다. 이 통증의 원인을 알기 전까지 엄청난 자부심으로 저 세상을 우습게 보고 세상 사람들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마음껏 내 삶에 발동을 걸고 살아왔던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필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넘어서는 도(道)를 알았다고 생각해 왔고, 병든 자들에게 왜 병이 드느냐고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하기도 하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 어떠한 병도 다 낳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영이 육을 살리는 것이다 라는 괴변 아닌 괴변을 마음대로 던지기도 한 돈키호테였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두드리는 작은 흉통(胸痛)에 병원을 찾았고 그리고 죽을 수도 있다는 중병이 내 안에 있음을 들었다. 이내 바로 꼬리 내리고 작디 작은 새 가슴이 되어 살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썩어버린 내 정신과 육체는 이렇게 하염없는 나락으로 나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저 흘러가는 물을 보며 작은 거인의 말 노자의 수유칠덕(水有七德)!
어떻게 살아야 하나…. 편백나무 사이로 계곡의 바위와 바위 사이로 말없이 흘러가는 저 물을 바라보며 공자의 무거운 옷을 벗어 던지고 무이산으로 들어가 자연의 삶을 터득한 노자(老子)! 이 양반이 약2500년이 넘어 오늘날 나에게 던지는 작은 자연의 이치(理致)를 보내 왔다.
“지금 이라도 물처럼 살아라~” 욕심이 화를 부르고 화가 더하여 죄를 낳으니 종국에는 죽느니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러면 150년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추신을 동봉해서 말이다. 문득 아래 계곡을 바라보며 물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높은 데서 흘러나오는 물은 어느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아래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었다. 높아지는 목이 아니라 낮고 낮은 목을 부여 잡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의 이치를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늘상 듣던 이야기였지만 지금 어찌 이 말이 내 마음을 때리지 아니하겠는가? 낮아져라…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
둘째로 계곡의 돌과 바위 사이를 타고 막힌 부위를 뚫고 낮은 데로 흘러가는 지혜(智慧)! 아! 내 생각만이 옳다고 아집을 부리며 지혜 없는 무식한 회한의 삶이 있었음을 고백해본다. 그래 타인의 생각도 인정하고 살아가는 지혜를 이곳에서 배운다.
세 번째로 다른 골짜기에서 흘러 들어 오는 물들이 많다. 흙탕물도 오고 낙엽 썩은 물도 있고 온갖 잡탕물이 흘러오지만 물들은 합력하여 모두를 포용하는 대인(大人)의 기질을 발휘한다.
네 번째로 자연 만물의 가슴속에도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포용력으로 만물을 살리는 생명수! 이 또한 사람의 몸 속에서 영생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어찌 저 흘러가는 물이 거룩하지 않는가!
다섯 번째로 저 아래 계곡에 박혀 있는 관통바위를 뚫어내는 끈기와 인내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돌고 돌아 수천년 한번도 끊기지 않고 돌진하는 끈기와 인내로 결국 관통해버리는 노력을 보고 배워야 한다. 아름답게 닳아 수마(水磨) 된 돌들 옆으로 유유히 물길이 흘러 흘러 가고 있다.
여섯 번째로 물은 위험도 무서움도 없이 직진하여 장엄한 폭포에서도 두려움 없이 투신하는 용기가 있음을 부시시한 인간들에게 거침없이 던져 보여 준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하염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가 바로 용기(勇氣)를 결단(決斷)을 사람 보라고 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자는 마지막으로 유유히 흘러 흘러 바다로 가서 거대한 대양을 이루는 대의(大義)를 보라고 한다. 작디 작은 인간! 그러나 크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인간들이기에 이런 선인들의 마음을 읽고 큰 마음을 받아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물처럼 살아간다면 겸손하고, 쓸데 없는 고집 버리고 우회할 줄도 아는 지혜와 어떤 것도 다 포용하는, 어떤 어려움도 다 담아주는 융통성! 바위를 뚫는 끈질긴 인내와 용기를 보이는 자로 살아간다면 저 큰 바다를 이루는 대의를 품은 대인배가 되어갈 것이다. 허나 자신이 살아가면서 욕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구할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걱정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편백나무가 놓아주기 때문에 모여 모여 흘러가고 있다. 이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명(命)이요 이치(理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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