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찬 논설위원

▲ 강병찬 논설위원
추석은 올해 첫 수확을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참으로 넉넉하고 즐거워 감사가 절로 나오는 시즌이다.

하지만 요사이 우리는 추석에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아리송한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추석에 차례와 성묘가 급속도로 실종되고 있다. 유교에 대한 신봉이 쇠락한 시대이기에 차례와 성묘가 무슨 대수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미풍양속을 함부로 내다 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미풍양속이 품고 있는 참된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차례와 성묘가 얼마나 소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지 깨달을 수 있다.

차례와 성묘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기 전에 먼저 이들이 쇠락해 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대적 개념에 알맞는 미풍양속을 계승할 수 있다.

명절 풍속은 대개 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중세까지는 종교가 주는 관념이 개인적 행동양식은 물론 사회적 생활규범까지 결정하는 시기였다.

18세기 초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神主, 사자의 위패)를 파괴하는 바람에 신자 수만명이 사형을 당하는 참극을 맞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개신교 신자들이 제사를 거부했다. 이들의 제사 거부는 현대까지도 이어지며 가족 구성원 간 상당한 갈등을 유발했다.

제사문화는 종교적 갈등을 넘어 신구 갈등, 남녀 차별, 급기야 이혼 사유로 거론되기도 했다.

신구 세대 갈등은 조부나 부모가 신봉하고 있는 제사문화를 신세대들이 케케묵은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다.

남녀 차별은 제사 준비 과정에서 음식만들기 등 힘든 일은 여성들이 담당하지만 정작 제례 때는 남성만이 참여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제례가 끝나면 남성들은 큰 상에 둘러앉아 제주(祭酒)를 따라 서로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반면 여성들은 상에서 밀려나 부엌 같은 곳에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물론 뒷설거지도 오롯이 떠맡아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사문화는 남녀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악습으로 간주 됐다.

게다가 고부갈등까지 겹치면서 20세기 말 시댁의 제사 강요와 남편의 방임이 이혼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결까지 지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현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제사문화, 즉 추석 차례와 성묘를 우리가 왜 되살려야 하며,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가. 계승을 하더라도 드러난 병폐와는 단절할 필요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차례와 성묘를 계승해야 하는 사례를 찾아보자.

구한말 서양에서 온 한 여의사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빽빽이 들어선 묘지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린아이를 데린 한 조선 여인이 음식을 싼 보자기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묘지들 속으로 들어가 한 묘지 앞에 다다랐다. 그녀는 그곳에 음식을 차려놓고 흐느끼는 듯 무언가 중얼거렸다.

여의사는 그녀가 뭔가 주문을 외우는 듯 느꼈으며 그 말의 뜻이 무척 궁금했다. 그 여인이 아무 표시도 없는 수천의 묘지들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묘지를 찾아내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그녀의 그때 그 중얼거림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부모에게서 그와 비슷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간 가족에 대한 영면의 기원, 사무치는 그리움, 머지않아 만나자는 염원, 그리고 남은 가족과 자식들의 안녕을 지켜주고 앞길을 열어 달라는 바람 등이다.

이것으로 보면, 우리 성묘문화를 종교적 제례로만 규정할 이유가 없다. 성묘는 곧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과정과 이유, 조상의 유훈을 되새기는 후손에 대한 산교육, 현재와 영원을 잇는 가교가 된다.

더욱이 설날이나 추석에 집에서 차례 후 첫 행선지로 성묘를 가는 풍속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지혜로운 민족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차례 또한 이와 못지않다. 원근 각지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건전한 가족주의의 요체다.

요새 가족들은 평소 직장과 군무, 학업 등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기에 명절에 연로한 부모를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다.

또 가족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혹 어려운 일을 당한 경우도 가족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헤쳐 나갈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 일제강점기, 6·25전쟁이 몰고 온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후손들을 반듯하게 키워냈으며,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도록 기반을 닦아 준 조상들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은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참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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