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아쉬운 EPL 데뷔전을 마쳤다. 몸에 좋은 약이 됐을 경기다. 겸손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임해야한다. © AFP=News1

개막전부터 화끈한 활약을 펼치면서 강인한 인상을 남기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다. 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은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먼 손흥민에게는 몸에 좋은 약이 됐을 경기다.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이 13일 오후(한국시간) 잉글랜드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선덜랜드와의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원정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영국 무대 데뷔전을 가졌다. 손흥민은 후반 16분 교체 아웃될 때까지 원톱 케인의 뒤를 받치는 2선 공격수로 활약했다.

토트넘 구단과 포체티노 감독의 손흥민을 향한 기대감을 알 수 있는 데뷔전이었다. 손흥민은 첫 번째 공식전에서 선발로 출전했고, 프리킥과 코너킥 등 데드볼 상황에서 전문 키커로 나섰다. 400억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즉시전력'으로 영입한 카드라고는 하지만 신뢰가 두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대목이다.

기대가 컸던 까닭일까. 손흥민의 플레이 자체는 바라보는 시선의 크기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언제나 위풍당당했던 손흥민은 부담에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전반 종료 직전 카일 워커가 내준 패스를 골문 앞에서 '헛발질'했던 것은 실수라고 밖에 보기 어렵다. 하지만 후반 5분에 나왔던 장면은 손흥민이 진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박스 안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자신이 충분히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수비수가 더 많이 붙어 있던 동료에게 패스를 했다. 머리가 복잡했을 상황이다. 동료들과의 원만한 호흡을 위한 이타적인 플레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기회는 무산됐고, 손흥민의 선택은 무의미한 패스로 그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손흥민은 벤치로 들어가며 데뷔전을 마쳤다.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은 '적극성'이다. 빠른 주력과 묵직한 킥을 앞세워 과감하게 돌파한 뒤 거침없이 슈팅을 때리는 스타일이다. 호날두나 베일을 연상시키는 유형이다. 테크니션은 아니다. 상대를 윽박질러 주눅 들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선덜랜드전의 손흥민은 그간의 손흥민답지 않았다. 2가지 측면에서의 보완이 필요하다.

하나는 철저한 준비다. 지금까지 그리 길지 않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손흥민은 딱히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A매치에서도 그리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런 측면에서 EPL 입성은, 무대가 바뀌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잔뼈가 굵었던 분데스리가 내 이적(함부르크→레버쿠젠)이나 형들의 든든한 격려를 받는 대표팀에서의 일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판이 새로 깔렸고, 스스로 극복해야한다.

EPL 대선배 박지성은 "손흥민이 독일에서 이미 능력과 잠재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EPL에서도 충분히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덕담하면서도 "하지만 스스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분데스리가 수비수와 EPL 수비수는 분명히 다르다. 거칠고 힘으로 몰아치는 상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자신이 고민해야한다"는 충고를 전했다.

선덜랜드전에서 손흥민은 인상에 남을 돌파를 보여주지 못했다. 자신감 결여였는지 힘에 눌렸는지는 더 지켜봐야겠으나 제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쉽지 않은 상대다. 자신감은 취하되 자만심은 버리고 치밀하게 상대를 연구해야한다. 아직 시즌 초반이나 선덜랜드는 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팀이다. 앞으로 만날 적은 선덜랜드보다 강할 가능성이 높다.

모순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손흥민 특유의 당돌함도 요구된다. 공부하는 자세는 겸손해야겠으나 필드에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전반 37분 크로스바를 넘겼던 터닝 슈팅 같은 장면들이 자주 나와야한다. EPL은 수준도 높고 냉정한 무대다. 토트넘 멤버들이 당장 스물셋 대한민국 축구선수에게 일부러 공을 배달해 줄 리가 없다.

팀이 400억원을 투자해 모셔온 공격수의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임하는 것도 필요하다. 행하는 공격 시도가 번번이 성공하면 좋겠으나 실패해도 큰 손해는 아니다. 선덜랜드전 후반 5분 패스처럼, 시도조차 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신뢰도는 더 떨어진다. 어느 정도는 욕심이 필요하다. 20대부터 '난사왕'이었던 호날두는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됐다.

손흥민은 이제 스물셋이다. 완성된 선수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 발전해야할 플레이어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자세로 겸손하게 준비하고, 조금 실수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과감한 '난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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