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지난 6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이후 이어져 온 양국관계 협력 복원 기조의 지속 가능성과 과제를 함께 확인해 준 자리였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제3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대피에 협력하고 양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재외국민 보호각서 체결, 출입국 간소화를 위한 사전입국심사제도 협력 적극 모색 등 구체적 사안에 의견을 모았다. 또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은 광복 직후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귀국길에 올랐다가 의문의 폭침 사건이 일어났던 우키시마호 조선인 승선자 명부 등 19건의 자료를 우리 정부에 전했다. 일본이 확보한 75건의 자료 중 나머지도 추후 내용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한국 정부에 제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시다 총리의 퇴임을 앞두고 몇몇 구체적 협력 방안이 합의되고, 특히 지난 80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았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단 일부 등이 뒤늦게나마 제공돼 진상규명과 희생자,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안한 한일관계 미래에 대한 전망이 씻긴 것은 아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처는 여전히 부족하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간의 언급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과나 반성 같은 직접적인 표명은 여전히 없었으며,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한 역사 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원론적 언급도 되풀이했다. 일본 관련 사안에서 반일감정을 무조건 부추겨 반사이익을 받으려는 일부 국내 정치권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고 한일관계의 불안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은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부족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한 '제3자 변제방식' 해법,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등에서 일방적 양보 논란을 무릅쓰고 우리 정부가 협력관계 복원에 나선 것은 한일관계가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정세 안정의 핵심 축인 한미동맹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 유엔사령부의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과의 협력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우리 안보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글로벌 경제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는 관계 개선이 지속가능할 수 없고 그렇게 돼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관계가 정권과 관계없이 안정되고 우호 협력이 증진되기 위해선 나머지 '물잔 반 컵'을 채우려는 일본의 호응이 관건이다. 내년이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된다. 말이 아닌 실천과 진정성 있는 일본의 협력이 전제돼야 한일관계는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12번째 정상회담이자 마지막 회담은 적지 않은 숙제를 다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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